무더위 속의 델리에서 벗어나 마날리를 지나서 킬롱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 시체들이 쌓인 산이라는 별명을 가진 로탕 패스.
그 호칭에 걸맞게 길은 험하기 짝이 없었다. 도로에 바위나 얼음덩어리가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고 가파른 오르막 경사로도 있었지만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포장이 되지도 않은 진흙길이었다. 주로 로탕 패스 초입부에 있는 흙길에 얼음이 녹은 물이 섞여 형성된 진흙이었는데, 오랫동안 만들어져 왔고 만들어지고 있는 진흙이었기에 그 깊이와 점도는 상당했다. 로탕 패스를 지나가는 수많은 차들이 그 길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고, 위험할 뿐만 아니라 시간도 체력도 정말 많이 소모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로탕 패스를 전부터 넘어 다니시던 베테랑 드라이버 분이 차를 운전해 주셔서 비교적 편했기에 사진을 충분히 찍을 여유도 가질 수 있었고 (약골)체력 관리도 가능했던 것 같다. 덜컹거리는 차를 오래 타는 것도 꽤 힘든 일이었지만 그만큼 고지대의 시원한 공기와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경사진 들판에 누워서 선선한 공기를 마시고 구름과 번갈아가며 이따금 비치는 햇살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래의 명언이 잘 어울리는 절경이다.
자연은 신의 예술품이다.
- 단테
고지대를 향할수록 눈 덮인 봉우리가 자주 보였다.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풍경들 앞에서, 나는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아마도 이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특별한 기대는 하지 않고 갔던 인도였지만,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이런 멋진 산맥을 지나게 되어 기뻤고 앞으로도 세계의 멋진 지역들을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뜨겁게 들었다. 다음번에 다른 지역을 향할 땐 혼자 구석구석 탐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로탕 패스를 횡단하는 동안 XC50-230 렌즈 원툴로 사진을 찍었는데 결과는 그야말로 대만족이었다. 30만원 정도에 중고로 업어왔던 후지필름 렌즈 중에선 보급 라인인 XC 시리즈의 렌즈였지만 내가 막눈이어서 그런지 프리미엄인 XF 시리즈와 비교해도 해상력의 차이를 그다지 못 느끼겠고 높은 조리개값으로 인한 보케의 품질 저하만 제외하면, 아니 그 점을 고려하더라도 참 가성비가 좋은 렌즈라고 생각한다.
참, 앞으로는 A컷 사진들은 따로 글을 쓰고 싶은 게 아니라면 안 올라올 듯 하다. 사진 포트폴리오 티스토리를 따로 만들어서 운영할 생각이기 때문이다.